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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항소심의 직접주의 위반에 대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판례 등

2026.06.08
2026.06.08

형사항소심의 직접주의 위반에 대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판례 등

비교헌법적 검토를 통한 우리 형사사법 개선 방향

형사항소심의 직접주의 위반에 대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판례 등

법무법인(유한) 동인 재판소원TF
변호사 여운국, 문경희
【목 차】
  • Ⅰ. 서 론
  • Ⅱ. 우리 형사항소심의 구조와 직접심리주의의 헌법적 의의
  • 1. 사후심적 속심(事後審的 續審)으로서의 형사항소심
  • 2. 공판중심주의·직접심리주의의 헌법적 근거
  • 3. 제1심 무죄판결을 뒤집는 항소심에 대한 가중된 의무
  • Ⅲ.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관련 판례
  • 1. BVerfG, 2010. 9. 14. 선고 2 BvR 2638/09 결정
  • 2. BVerfG, 2003. 4. 30. 선고 2 BvR 2045/02 결정
  • 3. 영속화(Perpetuierung) 법리의 의의
  • Ⅳ. 유럽인권재판소의 Dan v. Moldova 판결
  • 1. 사건 개요
  • 2. 직접성의 원칙(Principle of Immediacy)
  • Ⅴ. 미국 연방대법원의 관련 판례
  • 1. Green v. United States 판결 — 이중위험금지의 정신
  • 2. Crawford v. Washington 판결 — 대면권의 본질
  • Ⅵ. 우리 형사사법에 주는 시사점
  • 1. 항소심의 무논증 무죄 파기에 관한 헌법적 문제점
  • 2. 대법원의 무논증 상고기각에 관한 헌법적 문제점
  • 3. 입법론적·실무적 개선 방향
  • Ⅶ. 결 론

Ⅰ. 서 론

형사항소심이 제1심의 무죄판결을 별다른 증거조사 없이 뒤집어 유죄로 변경하고, 이에 대한 상고심이 별다른 설시 없이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하는 사례가 우리 형사실무에서 적지 않게 발견된다.

이러한 재판 실무는 표면적으로는 형사소송법이 규정하는 절차의 외관을 갖추고 있으나, 그 실질에 있어서는 헌법 제27조가 보장하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헌법 제12조가 천명하는 적법절차의 원칙, 그리고 헌법 제27조 제4항이 선언하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심대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적 검토의 대상이 된다.

비교법적으로 보면, 독일 연방헌법재판소(Bundesverfassungsgericht; BVerfG)는 이미 2003년과 2010년의 결정을 통하여 「항소심이 제1심에서 신문된 증인의 진술을 제1심과 달리 평가하고자 할 때에는 원칙적으로 그 증인을 다시 신문하여야 하며, 이를 누락한 채 제1심과 다른 사실판단을 하는 것은 기본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법리를 확립한 바 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BVerfG)의 공식 판례 데이터베이스는 https://www.bundesverfassungsgericht.de 학술적 1차 자료로는 https://www.hrr-strafrecht.de(형사판례 전문 사이트), https://dejure.org).

또한 유럽인권재판소(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 ECtHR, 또는 독일어 약어 EGMR)는 2011년 Dan v. Moldova 사건 (Dan v. Moldova, Application no. 8999/07, Judgment of 5 July 2011. 판결문 전문은 유럽인권재판소 공식 데이터베이스 HUDOC(https://hudoc.echr.coe.int/eng?i=001-105507)) 에서 「제1심 법원이 증거를 직접 평가한 후 무죄를 선고한 경우, 항소심이 증인을 직접 신문하지 않고 무죄판결을 파기하여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하는 것은 유럽인권협약 제6조 제1항의 공정한 재판 보장과 양립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이른바 「직접성의 원칙(principle of immediacy)」을 명확히 하였다.

한편 미국 연방대법원도 Green v. United States 판결 (Green v. United States, 355 U.S. 184 (1957). 판결문 전문은 미국 의회도서관(Library of Congress) 공식 데이터베이스(https://tile.loc.gov/storage-services/service/ll/usrep/usrep355/usrep355184/usrep355184.pdf), Justia U.S. Supreme Court Center(https://supreme.justia.com/cases/federal/us/355/184/), Cornell Law School Legal Information Institute(https://www.law.cornell.edu/supremecourt/text/355/184)) 을 통하여 「국가가 그 모든 자원과 권력을 가지고 한 개인에 대하여 어떤 의혹범죄에 관하여 반복적으로 유죄판결을 받아내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 인권법 원칙을 정초한 바 있다.

이 글은 위와 같은 비교법적 자료에 비추어 우리 형사항소심이 제1심의 무죄판결을 별다른 증거조사 없이 뒤집고 상고심이 이를 무논증으로 기각하는 실무관행이 헌법적으로 어떠한 문제를 안고 있는지를 검토하고, 그 개선 방향을 모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하에서는 먼저 우리 형사항소심의 구조적 특성과 직접심리주의의 헌법적 의의를 살펴본 후(Ⅱ.), 독일 연방헌법재판소(Ⅲ.), 유럽인권재판소(Ⅳ.), 미국 연방대법원(Ⅴ.)의 관련 판례를 차례로 검토하고, 마지막으로 이러한 비교법적 검토가 우리 형사사법에 주는 시사점을 정리한다(Ⅵ.).

Ⅱ. 우리 형사항소심의 구조와 직접심리주의의 헌법적 의의

1. 사후심적 속심(事後審적 續審)으로서의 형사항소심

우리 형사항소심은 대륙법계 전통에 따라 속심(續審)을 기반으로 하되 사후심(事後審)의 요소도 상당 부분 가미된 이른바 「사후심적 속심」의 성격을 가진다.

대법원은 이러한 형사항소심의 구조에 관하여 「항소심이 심리과정에서 심증의 형성에 영향을 미칠 만한 객관적 사유가 새로 드러난 것이 없는데도 제1심 판단을 재평가하여 사후심적으로 판단하여 뒤집고자 할 때에는, 제1심의 증거가치 판단이 명백히 잘못되었다거나 사실인정에 이르는 논증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어긋나는 등 그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볼 만한 합리적인 사정이 있어야 하고, 그러한 예외적 사정도 없이 제1심의 사실인정에 관한 판단을 함부로 뒤집어서는 안 된다」고 판시하여 왔다 (대법원 2017. 3. 22. 선고 2016도18031 판결. 동지의 판례로 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9도14065 판결, 대법원 2022. 5. 26. 선고 2017도11582 판결 등이 있다.).

이러한 법리는 단순한 소송법적 원칙이 아니라 헌법적 의미를 갖는다. 항소심이 제1심에서 직접 신문된 증인의 진술을 그 증인을 다시 신문하지 아니한 채 기록만으로 재평가하여 다른 결론에 이르는 것은, 피고인이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에 대하여 실질적으로 다툴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특히 형사항소심이 제1심의 무죄판결을 유죄로 변경하는 경우, 그 변경의 결과로 피고인의 신체의 자유를 비롯한 헌법상 기본권에 중대한 제약이 가해진다는 점에서, 그러한 변경에 이르는 절차의 적법성과 충실성은 헌법적 차원에서 엄격하게 통제되어야 한다.

2. 공판중심주의·직접심리주의의 헌법적 근거

우리 헌법 제27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같은 조 제3항은 신속·공개재판을 받을 권리를, 같은 조 제4항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보장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조항들로부터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도출된다고 일관되게 판시하여 왔다 (헌법재판소 2013. 8. 29. 선고 2011헌바253, 2012헌바470(병합) 결정.). 헌법재판소는 또한 형사절차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핵심 내용을 「공개된 법정의 법관의 면전에서 모든 증거자료가 조사·진술되고 이에 대하여 피고인이 공격·방어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는 재판」으로 정의하면서, 「당사자주의와 구두변론주의가 보장되어 당사자에게 공소사실에 대한 답변과 입증 및 반증의 기회가 부여되는 등 공격·방어권이 충분히 보장되는 재판을 받을 권리」가 그 핵심임을 명확히 하였다 (헌법재판소 2001. 8. 30. 선고 99헌마496 결정 ; 헌법재판소 2013. 8. 29. 선고 2011헌바253, 2012헌바470(병합) 결정.).

공판중심주의와 직접심리주의는 이러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절차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핵심 원칙이다.

대법원은 「형사사건의 실체에 대한 유죄·무죄의 심증 형성은 법정에서의 심리에 의하여야 한다는 공판중심주의의 한 요소로서, 법관의 면전에서 직접 조사한 증거만을 재판의 기초로 삼을 수 있고 증명 대상이 되는 사실과 가장 가까운 원본 증거를 재판의 기초로 삼아야 하며, 원본 증거의 대체물 사용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실질적 직접심리주의를 채택하고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대법원 2009. 1. 30. 선고 2008도7917 판결. 동지의 판례로 대법원 2021. 6. 10. 선고 2020도15891 판결.).

이러한 원칙은 단지 형사소송법상의 기술적 절차원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헌법 제27조가 보장하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실질적 내용을 이루는 헌법적 원칙이다.

3. 제1심 무죄판결을 뒤집는 항소심에 대한 가중된 의무

특히 형사항소심이 제1심의 무죄판결을 유죄로 변경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위에서 본 일반적인 사후심적 속심의 한계를 넘어 더욱 엄격한 절차적 요청이 적용된다.

대법원은 「제1심이 증인신문 절차를 진행한 뒤 그 진술의 신빙성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진술 내용 자체의 합리성·논리성·모순 또는 경험칙 부합 여부나 물증 또는 제3자의 진술과의 부합 여부 등은 물론, 법관의 면전에서 선서한 후 공개된 법정에서 진술에 임하고 있는 증인의 모습이나 태도, 진술의 뉘앙스 등 증인신문조서에는 기록하기 어려운 여러 사정을 직접 관찰함으로써 얻게 된 심증까지 모두 고려하여 신빙성 유무를 평가하므로,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증인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한 제1심 판단을 뒤집는 경우에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형사증명책임의 원칙에 비추어 이를 수긍할 수 없는 충분하고도 납득할 만한 현저한 사정이 나타나는 경우라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대법원 2022. 5. 26. 선고 2017도11582 판결 ; 대법원 2009. 1. 30. 선고 2008도7917 판결.).

이러한 법리의 헌법적 의의는 명확하다.

제1심이 증인을 직접 신문하면서 형성한 신빙성 판단은 단순히 진술 내용의 형식적 분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증인의 표정·태도·말투·반응 등 법정에서의 직접 관찰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심증을 포함하고 있다.

항소심이 이러한 직접 심증을 다시 자기의 직접 신문 없이 단지 기록만으로 재평가하여 다른 결론에 이르는 것은 직접심리주의의 본질적 내용에 반하는 것이며, 그 결과 피고인은 자신에게 불리한 새로운 사실인정의 형성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이러한 절차적 결함은 헌법 제27조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헌법 제12조의 적법절차의 원칙을 동시에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Ⅲ.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관련 판례

1. BVerfG, 2010. 9. 14. 선고 2 BvR 2638/09 결정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2010. 9. 14. 사건번호 2 BvR 2638/09 결정 (BVerfG, Beschluss der 1. Kammer des Zweiten Senats vom 14. September 2010 — 2 BvR 2638/09. 본 결정의 게재지는 NJW 2011, 49 ; BVerfGK 18, 58. 결정문 전문은 https://www.bundesverfassungsgericht.de/SharedDocs/Entscheidungen/DE/2010/09/rk20100914_2bvr263809.html) 을 통하여 항소심의 증인 재신문 의무에 관한 중요한 법리를 확립하였다.

본 결정은 형식상 민사사건에 관한 것이었으나, 그 핵심 법리는 항소심이 제1심에서 신문된 증인의 진술을 제1심과 달리 평가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그 증인을 다시 신문하여야 한다는 절차적 요청에 관한 것이며, 이는 형사사건에서도 — 오히려 더욱 강한 형태로 —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법리이다.

본 결정은 그 요지(Leitsatz) 제2항에서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Will das Berufungsgericht die Aussage eines bereits in erster Instanz vernommenen Zeugen anders würdigen oder anders verstehen oder werten als das erstinstanzliche Gericht, so hat es den Zeugen gemäß § 398 ZPO erneut zu vernehmen. Eine erneute Vernehmung darf nur dann unterbleiben, wenn das Berufungsgericht seine abweichende Würdigung auf Umstände stützt, die ohne Weiteres aus den Akten ersichtlich sind und der persönliche Eindruck des Zeugen für die Beurteilung nicht von Bedeutung ist."

이를 우리말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항소심이 제1심에서 이미 신문된 증인의 진술을 제1심과 달리 평가(anders würdigen)하거나 달리 이해 또는 판단(anders verstehen oder werten)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민사소송법 제398조에 따라 그 증인을 다시 신문하여야 한다. 이러한 재신문은 오직 항소심이 그와 다른 평가를 함에 있어 증인의 판단능력, 신빙성 또는 진술의 개연성을 기록만으로 판단할 수 있고 증인의 인적 인상이 중요하지 아니한 사정에 기초할 수 있는 때에만 생략될 수 있다.」

이 결정의 핵심은 「항소심이 제1심과 다른 사실인정을 하기 위해서는 그 다른 평가의 기초가 기록만으로 명백히 드러나야 하고, 증인의 인적 인상이 중요하지 않은 경우에 한정된다」는 점이다.

바꾸어 말하면, 제1심이 증인을 직접 신문하면서 형성한 심증의 핵심이 「증인의 인적 인상」, 즉 그 표정·태도·말투·반응 등에 있는 경우에는, 항소심은 자신이 그 증인을 다시 신문하지 아니하고서는 제1심과 다른 평가에 이르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리는 우리 헌법 제27조 제1항·제3항(공정한 재판) 및 헌법 제12조 제1항·제5항(적법절차)에 상응하는 비교법적 논거로 기능한다.

우리 형실무에서 항소심이 제1심에서 직접 신문된 피해자나 핵심 증인의 진술을 그 증인을 다시 신문하지 아니한 채 기록만으로 재평가하여 무죄에서 유죄로 변경하는 사례가 있다면, 이는 위 BVerfG 결정이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행위에 정확히 해당하는 것이다.

2. BVerfG, 2003. 4. 30. 선고 2 BvR 2045/02 결정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2003. 4. 30. 선고한 2 BvR 2045/02 결정 (BVerfG, Beschluss der 3. Kammer des Zweiten Senats vom 30. April 2003 — 2 BvR 2045/02. 게재지는 NJW 2003, 2444 ; NStZ-RR 2003, 299 ; StV 2003, 593 ; HRRS 2004 Nr. 344. 결정문 전문은 형사판례 전문 사이트인 https://www.hrr-strafrecht.de/hrr/bverfg/02/2bvr-2045-02.php PDF 직접 링크는 https://www.hrr-strafrecht.de/hrr/bverfg/02/2bvr-2045-02.pdf 이다.) 은 위 2010년 결정과 함께 형사항소심·상고심의 절차적 요청에 관한 가장 중요한 비교법적 자료이다.

이 결정은 형사사건에서 항소심(Landgericht Ingolstadt)이 제1심 증거조사의 핵심 쟁점에 관한 충분한 증거조사 및 증거판단을 결여한 채 유죄로 판단하였고, 상고심(바이에른 최고지방법원)이 이를 형사소송법 제349조 제2항에 의하여 무논증으로 기각한 사안에서, 항소심·상고심 모두 청구인의 신체의 자유(기본법 제2조 제2항 제2문)와 법치국가원칙(기본법 제20조 제3항)이 결합된 기본권을 침해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이 결정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형사재판상 직권탐지의무 및 증거판단에 대한 헌법적 요건의 심사기준이 「기본법 제2조 제2항 제2문(신체의 자유)과 제20조 제3항(법치국가원칙)의 결합」임을 분명히 하였다.

즉, 형사재판에서 충분한 증거조사 및 증거판단의 의무는 단순한 절차적 요청이 아니라 신체의 자유와 법치국가원칙으로부터 직접 도출되는 헌법적 의무라는 것이다.

본 결정의 핵심 판시는 다음과 같다.

「신체적 자유의 박탈을 수반하는 결정은 충분한 사법적 사실해명에 기초하여야 하고, 자유보장의 의의에 부합하는 사실적 근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법치국가적 절차의 불가결한 전제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법치국가성 원칙의 본질적 구성요소인 정의의 이념으로부터 도출되며, 모든 사법은 이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

이러한 법리의 우리 헌법적 의미는 분명하다.

우리 헌법 제12조 제1항은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적법절차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고, 헌법 제10조 후문은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형사재판에서 충분한 증거조사를 거치지 아니한 채 유죄를 선고하여 피고인의 신체의 자유에 제약을 가하는 것은, 위 BVerfG 결정이 정초한 법리에 비추어 우리 헌법상으로도 명백한 기본권 침해에 해당한다.

둘째, 본 결정의 더욱 중요한 의의는 이른바 「영속화(Perpetuierung) 법리」를 정초한 점에 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상고심(바이에른 최고지방법원)의 결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다.

「바이에른 최고지방법원의 결정에서는, 진술 대 진술 및 범인식별 사건에 관하여 연방대법원이 정립한 사실심 증거판단의 통제기준이 무시되었다. 형사부는 항소심 판결에 의한 기본권 침해를 영속화(perpetuiert)하였고, 따라서 그 자신도 헌법적 척도에 부합하지 못한다.」

이 법리는 「상고심이 항소심의 헌법위반을 무논증으로 기각함으로써 그 헌법위반을 그대로 유지·영속화하는 행위 자체가 별도의 독립한 헌법위반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는 상고심이 단순한 「하급심 판단의 검토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항소심에서 발생한 헌법위반을 시정할 적극적 헌법적 책무를 부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상고심이 그러한 책무를 다하지 아니하고 정형화된 부동문자나 다름없는 단 한 문장의 이유만으로 상고를 기각한다면, 그 자체로 별도의 독립한 헌법위반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3. 영속화(Perpetuierung) 법리의 의의

위 「영속화 법리」는 우리 형사사법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대법원은 상고가 이유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에 따라 심리불속행 결정으로 기각하거나, 또는 「원심의 판단에 ··· 잘못이 없다」는 정형화된 사유만으로 상고를 기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실무관행은 효율성 측면에서는 일정한 합리성을 가질 수 있으나, 항소심에서 헌법위반이 발생한 사건에 그러한 정형화된 무논증 기각이 이루어지는 경우, 위 BVerfG 결정의 영속화 법리에 비추어 보면 그 자체로 헌법적 통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은 「법률·명령·규칙·처분이 위헌인 경우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 조 제3항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반하는 취지로 재판한 경우를 재판소원의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만일 항소심이 헌법재판소가 확립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였고, 상고심이 이를 무논증으로 기각하여 그 침해를 영속화하였다면, 그 상고심 재판은 헌법재판소법 제68조의 재판소원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는 단순한 제도적 가능성이 아니라, 헌법적 통제의 실질을 확보하기 위한 필연적 귀결이다.

Ⅳ. 유럽인권재판소의 Dan v. Moldova 판결

1. 사건 개요

유럽인권재판소(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 ECtHR, 또는 독일어 약어 EGMR)가 2011. 7. 5. 선고한 Dan v. Moldova 판결(Application no. 8999/07) (Dan v. Moldova, Application no. 8999/07, Judgment of 5 July 2011. 판결문 전문은 HUDOC(https://hudoc.echr.coe.int/eng?i=001-105507) BAILII(https://www.bailii.org/eu/cases/ECHR/2011/1073.html) 후속 사건인 Dan v. Moldova (No. 2), Application no. 57575/14, Judgment of 10 November 2020 도 동일한 법리를 재확인하고 있다.) 은 형사항소심의 직접심리 의무에 관한 가장 명확한 비교법적 논거를 제공한다.

본 사건의 사실관계는 우리나라의 항소심 실무에서 종종 발견되는 사례와 매우 유사하다.

즉, 몰도바 제1심 법원이 청구인을 직접 신문하고 다수의 증인을 청취한 끝에 공소사실에 관한 증거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는데, 항소심 법원은 제1심에서 이미 신문된 증인들을 다시 신문하지 아니한 채 기록만으로 그 진술의 신빙성을 다르게 평가하여 청구인을 유죄로 인정하였다.

이에 청구인은 유럽인권협약 제6조 제1항 위반을 이유로 유럽인권재판소에 신청을 제기하였다.

2. 직접성의 원칙(Principle of Immediacy)

유럽인권재판소는 본 결정에서 협약 제6조 제1항이 보장하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관련하여 「직접성의 원칙(principle of immediacy)」을 명확히 하였다.

본 판결의 핵심 판시는 다음과 같다.

"The Court reiterates that the assessment of the credibility of a witness is a complex task which usually cannot be achieved by a mere reading of his or her recorded words. The Court considers that, when an appeal court is called upon to examine a case as to the facts and the law and to make a full assessment of the question of the applicant's guilt or innocence, it cannot, as a matter of fair trial, properly determine those issues without a direct assessment of the evidence given in person by the accused or by the witnesses."

이를 우리말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본 재판소는 증인의 신빙성 평가가 단순히 그 기록된 진술의 낭독만으로는 일반적으로 달성될 수 없는 복잡한 작업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한다. 본 재판소는 항소법원이 사실관계와 법적 쟁점 모두를 심리하면서 청구인의 유·무죄에 관한 문제 전체를 평가하여야 하는 경우, 공정한 재판의 관점에서 이러한 쟁점들은 피고인 자신 또는 증인들이 직접 행한 증거에 대한 직접적 평가 없이는 적절히 결정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확인한다.」

나아가 유럽인권재판소는 형사항소심이 무죄를 유죄로 변경하는 경우에 특히 엄격한 절차적 요건이 요구된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Where the first-instance court has acquitted the accused after directly assessing the evidence, the appellate court's quashing of the acquittal and conviction of the accused without hearing the witnesses anew is incompatible with Article 6 § 1 of the Convention."

「제1심 법원이 증거를 직접 평가한 후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경우, 항소심이 증인을 직접 신문하지 않고 무죄판결을 파기하고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하는 것은 협약 제6조 제1항의 공정한 재판 보장과 양립할 수 없다.」

본 판결은 우리 형사사법에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증인의 신빙성 평가는 단순히 기록된 진술의 낭독만으로는 일반적으로 달성될 수 없는 복잡한 작업」이라는 명제는 우리 대법원이 일관되게 판시하여 온 직접심리주의의 핵심과 정확히 일치한다.

둘째, 형사항소심이 무죄를 유죄로 변경하는 경우에 특히 엄격한 절차적 요건이 요구된다는 점은, 비록 우리가 유럽인권협약의 체약국은 아니지만 우리 헌법 제6조 제1항이 조약의 국내법적 효력을 규정하고 있고, 우리 헌법재판소도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해석할 때 유럽인권재판소 판례를 참고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해왔으므로 중요한 비교법적 권위로 원용될 수 있다.

Ⅴ. 미국 연방대법원의 관련 판례

1. Green v. United States 판결 — 이중위험금지의 정신

미국 연방대법원이 1957년 선고한 Green v. United States 판결(355 U.S. 184) (Green v. United States, 355 U.S. 184 (1957). 본 판결은 Hugo L. Black 대법관이 법정의견을 집필하였으며, 5대 4의 다수의견으로 결정되었다. 미국 의회도서관 공식 PDF(https://tile.loc.gov/storage-services/service/ll/usrep/usrep355/usrep355184/usrep355184.pdf), Justia U.S. Supreme Court Center(https://supreme.justia.com/cases/federal/us/355/184/), Cornell Law School LII(https://www.law.cornell.edu/supremecourt/text/355/184), 미국 정부 출판국 GovInfo(https://www.govinfo.gov/app/details/USREPORTS-355/USREPORTS-355-184)) 은 미국 수정헌법 제5조의 이중위험금지(Double Jeopardy Clause)의 헌장적 의의를 정초한 판결로서, 이후 60년이 넘도록 미국 형사사법의 핵심 판례로 자리잡고 있다.

본 판결에서 Black 대법관은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다.

"The underlying idea, one that is deeply ingrained in at least the Anglo-American system of jurisprudence, is that the State with all its resources and power should not be allowed to make repeated attempts to convict an individual for an alleged offense, thereby subjecting him to embarrassment, expense and ordeal and compelling him to live in a continuing state of anxiety and insecurity, as well as enhancing the possibility that even though innocent he may be found guilty."

「최소한 영미법계 법학에 깊이 뿌리내린 그 근저의 사상은, 국가가 그 모든 자원과 권력을 가지고 한 개인에 대하여 어떤 의혹범죄에 관하여 반복적으로 유죄판결을 받아내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그 개인을 곤혹스러움·비용·시련에 처하게 하고, 끊임없는 불안과 불안정의 상태에서 살도록 강요하며, 또한 무죄임에도 유죄로 판단될 가능성을 증대시키기 때문이다.」

본 판결의 정신은 우리 형사사법에 직접 적용 가능한 것은 아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 판결과 그 후속 판결들 (특히 Burks v. United States, 437 U.S. 1 (1978) ; United States v. Scott, 437 U.S. 82 (1978) ; Evans v. Michigan, 568 U.S. 313 (2013) 등은 「제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자는 그 판결이 아무리 잘못된 것이었다 하더라도 검사의 항소에 의하여 다시 형사처벌의 위험에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는 절대적 원칙을 확립하였다. 또한 Kepner v. United States, 195 U.S. 100 (1904) ; Fong Foo v. United States, 369 U.S. 141 (1962) 도 동지의 판례이다.) 을 통하여, 검사가 제1심 무죄판결에 대하여 항소하는 것 자체를 헌법적으로 봉쇄하는 입장에 서 있는 반면, 우리 형사소송법은 제338조에서 검사에게도 무죄판결에 대한 항소권을 광범위하게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법적 차이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미국 더블 제퍼디 법리의 근저에 흐르는 보편적 인권법 원칙 — 즉, 「국가가 그 우월한 자원을 가지고 한 개인을 반복적으로 처벌하려는 시도로부터 그 개인을 보호하여야 한다」는 원칙 — 은 우리 헌법의 해석에 있어서도 유효한 지침이 될 수 있다.

우리 헌법은 형식상 검사의 무죄판결에 대한 항소를 절대적으로 금지하지는 않으나, 그러한 항소가 인용되어 무죄가 유죄로 변경되는 경우에는 적어도 ① 항소심이 직접심리주의·공판중심주의에 따라 충분한 증거조사를 거칠 것, ② 상고심이 그 헌법적 정당성을 엄격히 통제할 것이라는 두 가지 절차적 안전장치가 작동하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는 미국식 절대적 보호의 「최소한의 한국적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2. Crawford v. Washington 판결 — 대면권의 본질

미국 연방대법원이 2004년 선고한 Crawford v. Washington 판결(541 U.S. 36) (Crawford v. Washington, 541 U.S. 36 (2004). 본 판결은 Antonin Scalia 대법관이 법정의견을 집필하였으며, 7대 2의 다수의견으로 결정되었다. 미국 의회도서관 공식 PDF(https://tile.loc.gov/storage-services/service/ll/usrep/usrep541/usrep541036/usrep541036.pdf), Justia U.S. Supreme Court Center(https://supreme.justia.com/cases/federal/us/541/36/), Cornell Law School LII(https://www.law.cornell.edu/supremecourt/text/541/36) 은 미국 수정헌법 제6조의 대면권 조항(Confrontation Clause)에 관한 가장 중요한 판례로서, 본 글의 주제와 관련하여 핵심적인 판시를 담고 있다.) 은 미국 수정헌법 제6조의 대면권 조항(Confrontation Clause)에 관한 가장 중요한 판례로서, 본 글의 주제와 관련하여 핵심적인 판시를 담고 있다.

Scalia 대법관은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다.

"Where testimonial statements are at issue, the only indicium of reliability sufficient to satisfy constitutional demands is the one the Constitution actually prescribes: confrontation. The Sixth Amendment commands, not that evidence be reliable, but that reliability be assessed in a particular manner: by testing in the crucible of cross-examination."

「진술적(testimonial) 진술이 문제될 때, 헌법의 요청을 충족시키는 신빙성의 유일한 표지는 헌법이 실제로 규정한 그것, 즉 대면(confrontation)이다. 수정헌법 제6조는 증거가 신빙성을 가지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신빙성이 특정한 방식 — 즉 반대신문이라는 시련(crucible) 속에서의 검증 — 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명령한다.」

본 판결의 핵심 명제는 「증거의 신빙성은 단순히 형식적 기준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신문이라는 시련 속에서의 검증을 통하여 비로소 헌법적 요청을 충족하는 신빙성을 가지게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법리는 우리 형사항소심에 직접적인 시사점을 제공한다. 항소심이 제1심에서 직접 신문된 증인의 진술을 그 증인을 다시 신문하지 아니한 채 단지 속기록만으로 신빙성을 재평가하는 것은, 위 court 판결이 강조한 「반대신문이라는 시련 속에서의 검증」을 결여한 것이라는 비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식 대면권 법리가 항소심 단계에서의 증인 재신문 의무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증거의 신빙성 평가가 헌법적 요청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서면 검토가 아닌 직접 대면을 통한 반대신문이 필요하다」는 본 판결의 정신은, 항소심이 제1심의 직접 신문에 의한 신빙성 판단을 뒤집기 위해서는 적어도 항소심 자체가 그 증인을 다시 직접 신문하여야 한다는 절차적 요청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Ⅵ. 우리 형사사법에 주는 시사점

1. 항소심의 무논증 무죄 파기에 관한 헌법적 문제점

이상에서 살펴본 비교법적 자료들을 종합하면, 우리 형사항소심이 제1심의 무죄판결을 별다른 증거조사 없이 뒤집어 유죄로 변경하는 실무관행은 여러 층위의 헌법적 문제를 안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첫째, 그러한 실무관행은 우리 헌법 제27조가 보장하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그 가운데에서도 「공개된 법정의 법관의 면전에서 모든 증거자료가 조사·진술되고 이에 대하여 피고인이 공격·방어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는 재판을 받을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

둘째, 그러한 실무관행은 우리 형사소송법이 채택한 공판중심주의·직접심리주의의 기본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우리 대법원은 이미 「법관의 면전에서 직접 조사한 증거만을 재판의 기초로 삼을 수 있고, 증명 대상이 되는 사실과 가장 가까운 원본 증거를 재판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실질적 직접심리주의를 확립하여 왔다. 항소심이 제1심에서 직접 신문된 증인을 다시 신문하지 아니한 채 그 진술의 신빙성을 다르게 평가하는 것은, 「원본 증거」(증인의 직접 신문)가 아닌 「대체물」(증인신문녹취서)에 의지하여 사실인정을 하는 것으로서, 우리 대법원이 확립한 실질적 직접심리주의에 명백히 어긋난다.

셋째, 그러한 실무관행은 헌법 제27조 제4항이 보장하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형사증명책임의 원칙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우리 대법원은 이미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증인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한 제1심 판단을 뒤집는 경우에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형사증명책임의 원칙에 비추어 이를 수긍할 수 없는 충분하고도 납득할 만한 현저한 사정이 나타나는 경우라야 한다」고 판시하였는데, 항소심이 추가 증거조사 없이 단지 기록만으로 제1심의 신빙성 배척 판단을 뒤집는 것은 그러한 「현저한 사정」의 존재를 객관적으로 입증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넷째, 그러한 실무관행은 피고인에게 「불의타(不意打)」를 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제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피고인은 항소심이 그 결론을 뒤집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 당연히 검사와 피고인에게 석명을 구하거나 피해자를 다시 증인으로 신문하는 등 추가 심리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게 된다. 그러한 기대 하에서 항소심이 첫 공판기일에 별다른 증거조사 없이 변론을 종결하고 곧바로 유죄를 선고하는 것은, 피고인에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방어권을 행사할 실질적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하며, 이는 헌법 제12조가 보장하는 적법절차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다.

2. 대법원의 무논증 상고기각에 관한 헌법적 문제점

우리 대법원이 형사상고에 대하여 「원심의 판단에 ··· 잘못이 없다」는 정형화된 단 한 문장의 이유만으로 상고를 기각하는 실무관행은, 그 자체로는 효율성 측면에서 일정한 합리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검토한 BVerfG의 영속화(Perpetuierung) 법리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무논증 상고기각이 헌법위반을 안고 있는 항소심 판결에 대하여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별도의 헌법적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항소심이 제1심의 무죄판결을 별다른 증거조사 없이 뒤집어 유죄로 변경한 사건에서, 피고인이 상고이유로 ① 항소심의 공판중심주의·직접심리주의 위반, ② 채증법칙 위반, ③ 적법절차 위반 등 구체적인 헌법적 논거를 제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이러한 개별 논거에 대하여 아무런 판단도 제시하지 아니한 채 정형화된 부동문자나 다름없는 단 한 문장의 이유만으로 상고를 기각하는 것은, 다음 두 가지 차원에서 헌법적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그러한 무논증 기각은 항소심에서 발생한 헌법위반을 그대로 유지·영속화함으로써 헌법위반 자체를 결과적으로 추인하는 효과를 갖는다. 이는 BVerfG가 2 BvR 2045/02 결정에서 명시적으로 위헌으로 선언한 「영속화(Perpetuierung)」에 정확히 해당한다.

둘째, 그러한 무논증 기각은 우리 헌법재판소가 당사자의 주장 개진 기회 보장을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보호영역에 포함된다고 한 결정에 비추어 보더라도, 피고인이 상고이유로 제기한 헌법적 논거에 대한 사법적 응답을 결여함으로써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절차적 측면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물론 대법원이 모든 상고에 대하여 상세한 이유를 설시하여야 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의 심리불속행 제도는 그러한 현실적 한계를 인정한 입법이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헌법위반의 의심이 제기되는 사안에 대하여까지 그러한 무논증 기각이 이루어지는 것은, 대법원이 헌법적 통제의 책무를 스스로 면제하는 것에 다름 아니며, 이는 우리 헌법이 대법원에 부여한 최고법원으로서의 헌법수호 의무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3. 입법론적·실무적 개선 방향

이상에서 검토한 비교법적 자료와 헌법적 문제점에 비추어, 우리 형사사법의 다음 두 가지 개선 방향을 제언할 수 있다.

첫째, 형사항소심이 제1심의 무죄판결을 유죄로 변경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적어도 다음 세 가지 절차적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원칙이 실무적으로 확립되어야 한다.

즉, ① 제1심이 직접 신문한 핵심 증인(특히 피해자 등 신빙성이 사건의 결정적 쟁점이 되는 증인)을 항소심에서 다시 직접 신문할 것, ② 검사와 피고인에게 추가 증거조사 및 의견 진술의 충분한 기회를 부여할 것, ③ 그러한 절차를 거친 결과 제1심과 다른 사실인정에 이르게 된 구체적·합리적 근거를 판결문에 상세히 설시할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요건들은 비록 우리 형사소송법에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지는 않으나, 헌법 제27조와 제12조의 해석상 도출되는 헌법적 요청이라고 할 것이다.

둘째, 우리 대법원도 형사상고심에서 항소심의 헌법위반 가능성이 제기된 사건에 대해서는 단순한 정형화된 무논증 기각을 지양하고, 그 헌법적 쟁점에 대한 실질적 판단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실무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

특히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3항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반하는 취지로 재판한 경우를 재판소원의 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대법원은 항소심이 우리 헌법재판소가 확립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였는지 여부를 적극적으로 심사할 헌법적 책무를 부담한다고 보아야 한다.

셋째, 입법론적으로는 형사소송법에 「항소심이 제1심의 무죄판결을 유죄로 변경하는 경우의 절차적 특칙」을 명문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독일 형사소송법은 항소심에서의 직접 신문 의무를 비교적 엄격히 규정하고 있고, 유럽인권재판소 판례도 그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도 이러한 비교법적 추세에 비추어, 형사소송법 제370조 이하의 항소심에 관한 규정을 보완하는 입법적 개선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Ⅶ. 결 론

이 글은 우리 형사항소심이 제1심의 무죄판결을 별다른 증거조사 없이 뒤집어 유죄로 변경하고, 이에 대한 상고심이 별다른 설시 없이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하는 실무관행이 안고 있는 헌법적 문제점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유럽인권재판소·미국 연방대법원의 관련 판례에 비추어 검토하였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2010년 결정(2 BvR 2638/09)을 통하여 「항소심이 제1심에서 신문된 증인의 진술을 제1심과 달리 평가하고자 할 때에는 원칙적으로 그 증인을 다시 신문하여야 한다」는 법리를, 2003년 결정(2 BvR 2045/02)을 통하여 「상고심이 항소심의 헌법위반을 무논증으로 기각함으로써 그 헌법위반을 영속화하는 행위 자체가 별도의 독립한 헌법위반을 구성한다」는 영속화 법리를 각각 정초하였다.

유럽인권재판소는 2011년 Dan v. Moldova 판결을 통하여 「제1심이 증거를 직접 평가하여 무죄를 선고한 경우, 항소심이 증인을 직접 신문하지 않고 무죄판결을 파기하여 유죄를 선고하는 것은 협약 제6조 제1항의 공정한 재판 보장과 양립할 수 없다」는 직접성의 원칙을 확립하였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57년 Green 판결을 통하여 「국가의 우월한 자원에 의한 반복적 처벌 시도로부터 개인을 보호한다」는 보편적 인권법 원칙을, 2004년 Crawford 판결을 통하여 「반대신문이라는 시련 속에서의 검증」이 헌법적 신빙성 요건의 본질이라는 점을 각각 명확히 하였다.

이러한 비교법적 자료들이 공통적으로 확립한 원칙은 다음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즉, 「형사항소심이 제1심의 무죄판결을 유죄로 변경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절차적·실체적 충실성을 갖추어야 하며, 그러한 충실성이 결여된 항소심 판결에 대해서는 상고심이 적극적인 헌법적 통제를 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은 우리 헌법 제27조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헌법 제12조의 적법절차의 원칙, 헌법 제27조 제4항의 무죄추정의 원칙의 해석상으로도 동일하게 도출되는 헌법적 요청이다.

우리 형사사법은 그동안 비교법적 자료의 축적을 토대로 꾸준히 발전하여 왔다.

본 글에서 검토한 비교법적 자료들은 우리 형사항소심·상고심의 실무를 보다 헌법친화적인 방향으로 개선하는 데 유용한 지침을 제공한다.

우리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본 글에서 제기한 문제점들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응답하고, 헌법 제27조가 보장하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실질적 보장을 위한 사법적·입법적 노력을 기울일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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