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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경제] 일사불란한 정부와 그 부작용

2017.10.20

[시론] 일사불란한 정부와 그 부작용


고용노동부가 지난 7월부터 파리바게뜨와 그 협력업체, 직영점, 가맹점 등에 대한 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 이 회사가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며 제빵기사와 카페기사 5000여 명을 25일 이내에 직접 고용할 것을 지시했다. 제빵기사들이 협력업체와 근로계약을 맺었으나 사실상 본사에서 직접 업무지시를 받고 있어 관련 법률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근무시간 이전에 출근한 제빵기사에 대한 연장근로수당의 지급도 명했다.

 

 프랜차이즈 업계는 고용노동부의 시정명령이 불합리한 이유를 조목조목 제시하며 크게 반발하고 있으며, 여기에 정치권도 가세하여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비단 해당 업체나 일부 프랜차이즈 업계뿐만 아니라 많은 유사 사업장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과연 어느 쪽의 주장이 타당한지는 결국 법원에서 판가름 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동안 프랜차이즈 업계가 불법적인 방법으로 직원을 파견 형태로 간접 고용하고 그로 인한 수익을 올렸다면 이는 시정되어야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은 지난 십수년 동안 문제 제기가 있었던 사안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던 정부가 정권이 바뀌고 장관이 새로 취임하자 즉각 조사에 나서 불과 몇 달 만에 전광석화처럼 결론을 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지방노동청에서도 경쟁적으로 노동 관련 사건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엔 다시 ‘블랙리스트’가 언론에 오르내렸다. 지난 MB 정부 때에도 블랙리스트가 작성되었으며 이와 관련하여 검찰이 전직 국정원장을 조사한다는 것이다. 해당 문건이 공개되자 현 서울시장과 당시 불이익을 당했다는 연예인 등이 인터뷰를 통해 억울함을 호소하며 관련자들을 고소하였고, 서울중앙지검 댓글전담수사팀은 신속한 진상 규명을 다짐하고 있다.

 

 이 또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는 해도 이미 7~8년 전에 있었던 사건이고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문제 제기가 있었음에도 검찰이 침묵하고 있었던 점에 비추어 보면 이번 수사는 이례적이라 할 만큼 빠른 움직임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아마도 전임 정부 시절의 이른바 ‘적폐’ 수사와 관련하여서는 그와 같은 기조가 유지될 것이 거의 틀림없어 보인다.

 

 정부기관은 아니지만, 지난 7월에는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가 본사 아닌 경주 시내 호텔에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기간 중 공사 일시중단 계획을 의결한 일도 있었다. 그에 앞서 대통령은 탈원전 시대의 개막을 선언했고, 이에 맞춰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일시중단하고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시민 배심원단이 완전 중단 여부를 판단하도록 결정했다. 이어 산업통상자원부는 한수원에 일시중단에 관한 이행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 바 있다. 지난 수십년간의 정부나 한국수력원자력의 일관된 입장이 불과 수개월 만에 뒤바뀐 것으로, 대통령의 한 마디가 일사불란하게 정부와 공기업에 시달되어 집행된 사례로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일들은 어느 정권에서나 있었던 일이며, 오히려 지난 정부에서 더 빈번하게 일어났던 일이긴 하다. 이와 같은 일련의 행태가 정권 교체 이후 이른바 ‘적폐 청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므로 바람직하다고 보는 이들도 많다.

 

 어느 권력이든 새로 집권을 하면 주도 세력의 이상에 맞는 사회 시스템을 꿈꾸는 것은 당연하며, 그 소속 공무원들이 인사권자의 정책을 뒷받침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던 일들이 급격하게 추진되거나 그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집행이 이루어질 경우, 그 반대편의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를 또 다른 의미의 보복이며 길들이기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이런 사례가 누적되어 훗날 정권이 교체된 후 똑같은 논리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것을 우리는 여러 차례 보아왔다.

 

 일사불란한 정부는 필요하다. 그러나 최소한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