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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신문]한국 사법시스템의 전환기 속 상고심 개혁 논의의 방향에 대한 고찰

2019.10.30

한국 사법시스템의 전환기 속 상고심 개혁 논의의 방향에 대한 고찰


최근 충실한 재판을 위한 상고심 개선 토론회가 다시 개최되었다. 상고법원 도입 시도로 인하여 유발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이 각종 포탈에서 검색어 상위를 유지하고 오랜 기간 국민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여러 명이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상고심 제도 개선 논의는 과거 30년 동안, 아니 멀게는 민사소송법 제정 이후의 꾸준한 주제로 대부분의 법조인들이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1990년 상고허가제가 폐지된 이래 대법원에 접수되는 상고사건의 수는 급속도로 증가해왔다. 1993년에는 1만3740건이 접수되어 실제 재판업무를 담당하는 대법관 1인당 1145건이 접수되었고, 매년 상고사건수가 급증하여 10년이 지난 2003년에는 1만9295건이 접수되었는데 그 후로 대법원 접수사건이 더욱 가파르게 증가하여 다시 10년이 지난 2013년에는 3만6110건이 접수되었고, 2018년에는 4만7979건(대법관 1인당 3691건)이 접수되어 1993년에 비하여 상고사건접수건수가 3.5배나 증가하였다. 이와 같은 상고사건의 폭증은 정상적인 사건 심리를 불가능하게 하였고, 그 문제 해결을 위하여 과거 30년 동안 끊임없이 논의가 있어 왔다.

 

이 문제의 해결은 단순해 보인다. 상고사건접수를 줄이는 방법과, 상고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대법관을 늘리는 방법, 두 가지이다. 전자의 방법이 상고제한제이며, 절충적 방법들이 상고법원 도입안, 고등법원의 상고부 또는 상고심사부 설치안이다. 대법관을 늘리는 방법도 대법관 수를 어느 정도 늘려야 하는지에 대한 이론이 있고, 절충적으로 대법원을 이원화하는 안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가지 안들에 대하여 법조계 내에서도 이론이 많고 국회와 국민들의 생각도 다르다. 변협은 대체로 대법관의 수를 늘리자는 의견이지만 법원은 대체로 이에 대하여 반대 의견이었다. 전원합의체의 구성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정책법원으로서의 기능이 어려워진다는 이유이다. 변협의 주장대로 대법관 수를 늘린다면 최소한 현재 대법관 수의 10배가 되어야 한다. 10배가 되면 대법관 1인당 사건수는 370건 정도 된다. 이 정도의 사건수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서울고등법원 민사부의 경우 법관 1인당 접수건수가 100건도 되지 않는다), 최소한 10배는 늘어야 재판연구관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사건을 검토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확보될 수 있다. 그렇다면 대법관 수를 130명 이상으로 증원해야 하는데, 그렇게 많은 대법관들이 존재하게 된다면 호칭부터 대법관이 아닌 대법원의 판사로 바꾸어야 할 것이며, 그 역할도 많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독일과 프랑스가 그와 같은 방식이다. 독일은 최고법원이 모두 5개 있으며 그곳에서 근무하는 법관의 수는 300명이 넘는다. 프랑스도 민·형사 최종심을 담당하는 파기원의 법관만 120명(판결에 관여하는 법관에 한정할 때)이 넘는다.
 
대륙법계 국가에서 최고법원의 역할은 정책법원이라기 보다는 국민의 권리구제와 법령해석의 통일이라는 법원의 고유권한을 다루는 최종심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정책법원은 미국식 사법시스템에서 최고법원에 주어지는 역할이다. 이러한 역할은 황제에 의해 임명되거나 자문기관 역할이었던 대륙법계 법원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국민 대표성이 약한 기관이 정책을 결정한다는 것은 그 정당성이 부인되기 쉽다.
 
우리나라의 사법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대륙법계 시스템이다. 직업법관이 재판을 지휘하고 있고, 최종 판단까지 맡고 있다. 미국과 같이 법관은 재판 진행만 하고 당사자들(변호사들)이 재판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당사자주의 시스템과는 다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대법원의 구성과 역할은 영미법계의 최고법원 구성 및 역할과 비슷하다. 우리나라 최초 법원조직법은 9인 이내의 대법관을 두도록 정하고 있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대법관 수와 같다. 이는 미군정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일본도 기존 최고법원이었던 대심원의 재판관이 50명 내외였으나 미군정의 영향을 받은 최고재판소는 위헌법률심사권을 가지면서 총 15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되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헌법에서의 법원의 지위는 독일이나 프랑스보다는 미국 헌법과 비슷하다. 대륙법계 하급심 구조에 미국식 최고법원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이 끊임없는 상고심 개혁논의의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70년 이상 수 차례 법이 개정되고 끊임없는 개혁 논의가 있었으나 아직 그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1심, 항소심, 상고심 개선 논의는 대부분 별도로 이루어져 왔다. 상고심 개혁만큼 하급심 심리방식의 개혁도 쉽지 않다. 하급심 강화를 통하여 상급심으로의 상소를 줄이고자 하지만 지금껏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륙법계와 영미법계 국가의 사법제도를 잘 살펴보면, 1심과 상소심 구조는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나라의 사법제도는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 나라의 오랜 사법 전통 속에서 서서히 시행착오를 수정해 가면서 형성되어 온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법제도의 선진국으로부터 사법제도를 도입하고자 할 때는 제도의 일부분만 보아서는 안 되고 그 나라 사법제도 전체를 고찰하여 어떤 유기적 특징이 있는지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영미법계는 오랜 배심제의 전통이 있다. 배심재판에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는 비판으로 배심재판이 갈수록 감소하고 있으나 영미법계에서 1심 재판은 전통적으로 배심이 사실인정을 하였다. 이와 같이 배심이 사실인정을 하는 사법시스템에서는 상소는 상당히 제한적으로 인정된다. 영국과 미국 모두 상소는 엄격한 요건하에서 허가를 받아야 가능하다.

 

그런데, 배심은 그 성격상 일단 소집된 이상 다시 소환하기 어려워 집중적으로 변론을 열 수밖에 없고 변론의 준비를 위하여 변론 전 절차에서 당사자들의 주장과 쟁점이 모두 정리되어 있어야 하고 증거도 모두 사전에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 미국에서의 이러한 과정(디스커버리 제도)은 대부분 당사자들이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배심의 사실인정을 법관들로만 구성된 상소심 재판에서 손쉽게 뒤집을 수 없다. 상소심은 배심의 판단을 최대한 존중하여야 하고 배심이 인정한 사실관계를 기초로 하여 법률적 판단에 관하여만 재심사를 하여 다시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상소허가제는 이러한 제도의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 같은 대륙법계는 이와는 달리 사법제도가 형성되어 왔다. 프랑스의 민사 1심과 2심은 모두 사실심으로서 큰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1심과 2심 모두 법관의 주도하에 변론준비절차를 거치게 되고 그 절차에서 쟁점의 정리, 증거의 교환 등 대부분의 소송절차가 이루어진다. 1심과 2심의 차이는 재판을 담당하는 법관의 경력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뿐 본질적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프랑스 최고법원(파기원)은 그 역사적 특징으로 인하여 법 해석의 통일성 확보가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이러한 연혁적 특징으로 인하여 상고사건이 폭주함에도 상고제한으로 이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파기원의 재판부를 증설하거나 재판을 보조할 수 있는 인력을 보강하고 운영방법을 개선함으로써 해결하려고 하였다.

이와 같이 한 나라의 사법제도는 하나의 유기체라고 할 수 있다. 심급제도와 하급심 및 최고법원의 구성과 운영방식, 법조인 양성 시스템 모두 관련성을 갖고 유기적으로 짜여져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2007년 이후 사법시스템에 큰 변화가 있었다. 미국식 로스쿨을 도입하였고, 형사소송법에서 당사자주의적 요소를 대폭 강화하였으며, 법관의 임용방식도 10년 이상의 변호사 경력이 있는 법조인 중에서 선발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모두 미국식 사법제도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대한변호사협회의 변호사 구성에서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40%를 초과하였다. 앞으로 다시 10년이 흐르면 80%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젊은 변호사들은 기존 법조인들과 상당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들에게 법조인의 기본 영역은 변호사이다. 예전과 달리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젋은 법조인들이 재조의 길이 아닌 재야의 길을 가고 있다. 결국 시간의 문제일 뿐 우리 나라 법조는 변호사들에 의하여 변화하고 움직이는 사회로 바뀌어 갈 것이다(독일과 프랑스에서 사법개혁은 법무부가 담당하지만, 미국은 변협이 주된 역할을 해왔다).

 

또한 법원도 10년 이상 경력의 변호사들로 구성되기 시작하고 관료주의를 벗어나면서 많은 변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검찰도 현재의 변화의 흐름을 비켜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법조 전체의 변화는 바람직한지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이미 미국식 사법제도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향후 상고제도 개혁의 방향, 크게는 사법제도 개혁의 방향은 10년 20년을 두고 하나의 큰 흐름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현재의 제도 개혁의 논의도 이러한 흐름 속에 있음을 인식하고 비교법적으로 충분한 연구를 거친 후 거시적인 방향성에 대한 고민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러한 인식에 기반한 법조인 양성시스템, 법관의 임명방식, 1심과 상소심, 최고법원의 구성 및 심리방식에 대한 연구와 고찰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